기독교 교육의 발생
기독교 교육의 발생
(루이스 조셉 셔릴 지음)
1.기독교 교육의 역사
기독교는 교육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종교이다. 기독교 교육은 항상 기독교 신앙과 긴밀한 관계로 나타났다. 기독교 신앙과 분리된 기독교 교육은 생명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신앙과 교육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하나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런데 '신앙교육'이라해서 그것이 당연히 기독교 교육을 말한다 보기는 어렵다.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고 그것들이 나름대로 신앙을 말하고 신앙교육을 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교육을 의미하는 신앙교육을 말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신앙교육'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기초는 한 민족종교와 사회생활의 특성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히브리인들과 유대인들의 교육에서 비롯된다.
2.히브리인의 교육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가정은 하나님의 뜻이 생활속에 구현되는 통로였다.따라서 가정은 필연 이상의 종교적 공동체였다. 특히 '쉐마(Shema)'가 그것을 보여준다.
가정은 히브리인들의 주요한 교육기관이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교사들은 부모,예언자,제사장,현인 그리고 시인들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신적 존재의 뜻을 추구할 때 다만 제사장의 교훈과 제사의식에 의존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였고 매일 일어나는 사건에 직면할 때마다 재해석 하기를 갈망했다. 자신들이 알 수 있는 간단하고 지적인 언어로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게 듣게해 줄 생명력있는 인간의 목소리의 추구는 예언자들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제사장들은 제단이나 희생제물로 제반문제에 답을 주었으나 예언자들은 사건을 통해 말씀을 전달했다. 그들은 내면세계와 도덕적 내용을 제시했고 영적 생활의 원동력을 주었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다양한 방법들을 기꺼이 수용하는 일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숭고하고 다양한 사상들이 나타나게 된 토양이 되었다. 신학적 관점에서 이 현상을 사람들의 마음에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을 준비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히브리 성인들은 자녀들에게 배우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조직체인 가정을 선택하여 그것을 학교로 만들었다. 종교와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가정은 종종 파괴된다. 그러나 이 민족의 경우 예외였다.
가정은 하나님의 속성과 뜻의 점증하는 계시가 가정 자체를 손상하지 않고 발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이었다. 성장하는 종교는 진기할 정도로 가정을 튼튼하게 하였다. 히브리 사상에서 가정은 '주님안에'있었고 주님은 '가정안에' 있었다.
가정교육의 첫째 특징은 특수기술과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부모의 책무였다. 두번째로 자녀들의 품행을 통제하는 족장사회에서의 부권은 자녀 교육의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유대인들은 신령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 세심한 주의를 했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때마다 그들 중에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서 지상의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다루었던 방법에 대한 지대한 찬사이다. 세번째로는 가정에서 전래된 구전전승을 가르쳤다. 아버지가 수행하여야할 근본적인 의무중 하나가 아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탈무드의 교리가 되었다.
가정에서 행하여진 의식은 오랜 시간을 통해 생겨났는데 이 종교의식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일정한 행동에 의하여 자녀들의 학습을 자극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의식은 원리를 구체화하므로 정적인 지식이 아니라 생생한 통찰력을 소유하도록 자극을 주었던 전체적 환경속에서 활용되었다.(안식일,축제,금식의 의식들)
3.유대인들의 교육
유대교에서 발전된 교육은 놀라울 정도로 역사의 거울이다. 우리는 이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 토라,율법의 발달,즉 외세의 저항의 무기이자 유대인 생활속에서 지대한 역활을 감당한 율법의 위치를 고찰 할 수 있다.
외세에 저항한 유대교는 토라의 랍비적 해석에 의존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토라에 복종함으로써 사람들 가운데 자유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이 유대교는 성전과 회당에서 예배를 통하여 가정을 통하여 그리고 학교조직을 통하여 제시된 교육으로서 영향력을 나타내었다. 회당에서는 회당장의 주관하에 종교행위와 교육행위가 동시에 행하여졌다. 이 회당으로부터 '베드 하세퍼' 일명 '책의 집'- 성문토라인 성서를 의미하는 책의 가르침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라는 초등학교가 분리되어 나오면서 제도가 공식적으로 출현하였고 고등교육기관으로 일명 '연구의 집' 또는 '설명의 집'이라 불리우는 '베드 탈무드'와 랍비 후보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일종의 신학학교로 '아카데미'가 있었다.
4.예수님의 교육의 방법
예수의 사역을 돌이켜 보면 어디서든지 예수가 가르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가 선포하였던 복음은 가르침을 함께 수반하였다.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그의 복음은 그의 선교를 무력하게 할 정도로 전체적으로 잘 못 이해될 수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예수의 교육의 방법들은 특별한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 교육방법
1)형식에 관하여: 예수의 교육의 상당한 부분은 짧은 격언과 계명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간단한 격언의 활용은 유대인들 중에서 가장 호감을 주는 교수 방법이다. 예수의 교훈은 대부분 비유의 형식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항상 큰 관심을 끌수 있었다.
2)청중에 관하여: 예수가 활용하였던 교수법이나 연설의 방법을 결정하는데 청중은 지대한 역활을 하고있다. 첫번째 유형의 청중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로 그들과의 관계에서 예수의 교훈은 신학적 논쟁이다. 온유하고 인자하며 부드러운 예수는 확실히 이러한 장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두번재 유형은 민중들로 그들의 관심은 육적인 질병에 더 관심을 갖는다. 예수가 기적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를 선택하였으면 그들의 지도자가 쉽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들에겐 비유로 말씀하심으로 단지 그들이 올바로 깨닫고 돌아오도록 초대할 뿐이다. 세번째 유형은 제자들이다. 그들에겐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지도하며 그들이 행하여야 하는 하나님 나라 사업을 수행할 도제의 신분으로 지도하기를 원하셨다.
3)내용:하나님의 속성
예수의 교육에는 독특하게 널리 파급되는 특징이 있어서 그 교육은 우리들의 안목과 관심에 영구히 밀착되어 있다. 그의 교육은 모든 인간 문제의 심층뿌리까지 깊이 뻗어있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교육이 생활속에서 가장 첫째되는 중요한 문제들을 과감히 파헤치고 있다는 관점에서 이해 될 수 있는 것과 비례하여 일정한 때에 발생한 독특한 형태의 인간의 행복이나 재난이 크고 작은 문제들로 자세하게 구분되기 시작한다.
예수가 파헤친 중요한 일들은 인간 관계성의 영역에 놓여진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러나 이것이 최종적이지 않다. 종국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성 관점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다루게 된다. 따라서 예수에게는 하나님의 속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예수의 교훈은 하나님의 속성에 이르는 유일하고 동일한 문을 열 수 있는 두가지 특징들, 즉 왕으로서의 하나님과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다.
5. 초대교회
예수의 교훈에서 명시된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평등성이 복음의 최초의 사회적 의미가운데 하나로서 분명히 나타나 있다. 초대 교회에서 기독교 공동체의 놀라운 발전과 함께 말씀 선포는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였고 따라서 말씀 선포뿐만 아니라 교육의 수단이 되었다.
초대교회에는 교사라 부르는 독특한 형태의 목회가 있었다. 교사는 영적인 지식에 관한 특별한 영적 은사, 혹은 카리스마를 받았다. 교사는 대중 집회에서 그에게 부과된 독특한 역활, 가르치는 일을 수행하였다.
가.초대교회의 교육형태
1)히브리 성서의 기독교적 해석
2)분명한 복음의 교육
3)기독교인의 신앙고백을 다룸
나.초대교회의 집회
집회에서 기독교인의 성경에 대한 신앙과 영의 체험의 중요성이 분명히 나타났으며 이곳에 초대교회의 교육에 미친 잠재적 요소가 형성되었다. 성령의 체험과 함께 성례전,특히 성만찬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는 형식적인 교육보다 더욱 심오한 감동적인 체험을 하였던 기독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첫번재 유형은 말씀을 위한 집회가 있었고 이의 목적은 덕을 세우는 것이었다. 두번재 유형은 교육이었다. 이 교육은 연설, 즉 언어를 통한 전달이었다. 세번째 부분은 예언이었다.
다.초대기독교가정
자녀 교육에 관하여 첫째로 주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두번째로 도덕적 행위가 강조되었고 훈계의 세번째 개념은 교훈이다.
라.초대 기독교의 저서들
가장 초기의 기독교 저서들은 여러가지 예로 보아 교육에 활용되어 기록된 문서들이다.
6.고대 기독교의 예배
가.예배
고대 사회에서 교육은 예배와 상호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세례문답 교육은 오늘날 성인교육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이 교육에는 세가지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한가지는 도덕적인 생활의 훈련, 두번째는 세례준비생에게 기독교 전승을 알게 하는일, 세번째는 기독교의 신앙과 생활방식에 깊이 있게 헌신하는 일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한가지 교육 유형으로 세례 준비생들의 미사는 예배의식 도중 시행되었다. 325년에서 450년에 이르는 기간 세례문답 교육의 발전이 절정에 다랐다.
이 시점에서 세례를 다루고 있었던 많은 설교와 훈계가, 혹은 신조의 전래, 그리고 주기도의 전승에 포함되었다.
자료와 방법론에 관한 연구서로 어거스틴의 "교육 미필자들의 교리문답식에 관하여"란 저술이 나왔다. 그후 수많은 강론집들은 세례식에 임박한 자격생들에게 시행되었던 설교식의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크리소스톰의 "세례준비생들에 대한 교훈", 암브로스의 "신조해설", 어거스틴의 "신조에 관하여" 는 위대한 학자들로부터 제시된 실례이다.
나. 가정과 공동체
국가와 연합으로 교회는 모든 사회를 기독교적으로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노력하였으나 기독교의 가정 개념이 이 시기에 희생되었다. 그때에 금욕자들의 공동체가 가장 고상한 기독교 사회로 간주되었을 때 결혼과 실제적인 가장관계는 완전성에 장애가 되었다.
고대교회는 몇몇 지역에서 "교리문답학교"로 알려져 있던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었다. 학습과목이 더욱 포괄적이었으며 세례준비생들의 교육에서 종전보다 더욱 철저하게 다루어졌다. 기독교가 그 당시 학문과 접촉하였던 도시들에서 발생하였던 교리문답학교들은 기독교 연구에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도입하였다. 그 학교들은 때론 지리학,천문학,철학,윤리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교양학부와 흡사하였다. 그 학교들은 또한 성서, 기독교 전승,신학등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신학교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7. 중세
교황 그레고리 대제는 교회를 전 사회를 기독교 사회로 만들기 위한 시도에 착수하였다. 약 800년 동안 유럽은 정신적으로 교회가 인간의 모든 생활을 통치하는 책임을 수행하는 거대한 시험장이되었다.
8세기 동안 교회는 금생과 저생의 모든 인간 운명의 통제자로 철저하게 모든 면에서 인류를 대표하여 왔다. 이러한 교회의 주권은 800년 동안 교육의 측면에서 볼때 한 통일성을 형성하고 있다. 교육은 이러한 권위의 가정에 의하여 형성되었으며 매 단계마다 그 권위에 의하여 특징지어졌다.
중세기 교육은 내면세계와 외면세계를 함께 지배한 교회에 의하여 권위의 배경에 반대하여 복음을 가르치는 이야기이다.
중세기에 있어 예배는 교육의 수단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중세교회의 학교들은 이와함께 발달한다.
개인 서평
1. 유대인들의 가정교육.
그들에게 있어 가정은 교회였교 학교였다. 오늘날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교회의 대형화속에 묻혀 사실 오늘날 교회는 가정을 잃었다. 교회에서는 장로요 집사지만 집에서는 한 아버지로의 역활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오늘날 학교의 교사의 지위는 그야말로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교회의 성경학교의 교사의 지위는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는가?
오늘날 청소년들의 대부분 문제아이들은 결손 가정에서 발생된다는 통계가 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이혼도 급증하고 있다. 교회의 역활이 무엇인가? 교회는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실상은 좀 거리감이 있다. 한 이야기로 한국 기독교인이 일본 기독교인에게 한국 기독교 폭발적인 부흥을 이야기 하며 몇십년도 안돼 전 국민의 반이상이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일본은 수백년이 되었어도 겨우 몇퍼센트밖게 없음을 비꼬자 일본 기독교인이 말했다 한다. "그럼 한국은 지금 천국이겠네요?" 그런데 이토록 엄청난 기독교인들이 생겨나고도 아직도 사기와 거짓이 가장 난무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는 교회내에서만 기독교인이었지 사회에서 가정에서는 그것이 되지 못했다. 먼저 가정에서 인정받는 장로요 집사요 교인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사회에 영향력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진 대부분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이제 가정에서 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야할 시점에 우리가 와 있다고 본다. 가정이 교회가 되고 학교가 되면 우리나라의 가장 고질적인 교육문제도 해결될것 같다는 소견이다.
2.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청중에 관한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무조건 사랑하고 온유하고 자비로워야한다는 사고를 갖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르침에 있어선 청중에 달리했다. 이는 우리가 대할 상대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교리적 문제로 예수님을 대항하는 자들이 있다. 이들에겐 우리도 단호하게 대해야한다. 또한 예수님보다 육신적 질병 치료와 축복에 관심이 더 많은 자들에겐 비유로 하나님 나라에 초대해야 한다. 또한 실제 예수의 제자로 선 자들에겐 단호히 모든 교육 방법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하지 못할 때 때론 타협적으로 때론 인간적으로 때론 발육하지 못한 기형적 어린아이가 될 수 있다.
3. 오늘날은 대부분 말씀을 중심으로 예배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성만찬이나 형식적 절기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때로 이는 초신자들 초청에 말씀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초대의 방편이 될 수 있고 신자들은 주님의 임재를 새롭게 접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대형교회를 통한 거대한 조직을 통한 전세계 복음화를 위한 작업이 자칫 하면 중세 800년간 이루어진 조직에서의 결속과 같을 수 있는 위험의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진정 전세계 복음화는 하나님 나라에 확장에 두어야한다. 이에 수반되는 거대한 조직은 분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