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윤리
전쟁과 윤리
1.행동주의
행동주의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항상 옳다는 입장이다.
1)성서적 지지:
가)창세기 14장에 나오는 롯을 구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전쟁을 하나님이 침략자로부터 평화로운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쟁을 승인했다고 해석한다.
나)모세를 통한 신정정치와 사울을 세운 왕정정치를 통해 정부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에 정부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여긴다. 정부의 전쟁 명령은 비록 생명을 파괴한다 할지라도 시민들은 하나님의 명으로 여기고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다)예수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란 가르침에서(마22:21) 정부가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고 그에게 속한 것을 인정한다.
라)바울은 딤전2:2에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와 감사를 하라 권고했다. 베드로도 주를 위해 정부의 제도와 요구에 순종할 것을 명한다(벧전2:13) 로마서 13장도 정부가 하나님께로부터 낳았으니 이의 권세에 굴복할 것을 권고한다.
2)철학적 지지
가)정부가 인간의 보호자라는 플라톤 철학의 입장에서 행동주의를 지지한다.
나)정부는 인간의 어버이이다. 또한 정부는 인간의 교육자이다. 국민은 자기 정부에 복종할 것을 계약했다. 국민은 자기 정부 밑에 남아 있지 않을 수가 없다. 정부가 없으면 사회적 혼란이 생긴다. 그러므로 정부에 대한 책임이 아무리 바람직하지 않아도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장점: 1.전쟁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2.히틀러가 일으킨 대량 학살등에 능동적이 태도를 취할 수 있다.
3.정의 실현을 갈망하는 시대 정의와 심판을 잘 나타낼 수 있다.
4.악한 시대,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오늘날 선량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근거로 적극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단점: 1.전쟁이 가져오는 대량 학살에 살인의 누명을 벗어날 수 없다.
2.정당하지 못한 전쟁, 부당한 명령에 대하여 설득력이 없다.
3.핵 전쟁의 경우 아무런 지지력이 없다.
4.전쟁에 수반되는 굶주림,전염병,죽음,인간 존엄의 경악성등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
2.평화주의
평화주의는 전쟁에 참여해서는 결단코 안된다는 것이다
1)성서적 지지
가)평화주의의 중요한 성서적 근거 구절은 출20:13 "살인하지 말라" 와 마5.39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이다.
살인은 항상 옳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성서 구절은 전쟁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구약에 나타난 전쟁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행해진 것들이 아니라 인간의 미개함으로 전쟁이 발발했으며 하나님이 이를 허락한 것이다.구약의 전쟁은 하나님의 온전한 의지가 아니라 허용적인 의지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전쟁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살인은 잘못된 것이다. 구약에서도 자기 적을 사랑할 것을 가르친다.(레19:18,사34,몬4) 예수도 원수를 사랑하며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명한다.(마5:44)
2)사회적 지지
전쟁은 모든 종류의 악- 굶주림,잔악성,전염병,죽음 등을 유발한다. 전쟁은 결국 악에서 기인되며 악을 초래하고 전쟁은 전쟁을 낳는다. 결국 본질적으로 전쟁은 인류를 통일시키기 보다 오히려 긴장과 복수와 새로운 전쟁의 가능성을 높인다.
장점: 1.인간의 가장 큰 악인 살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2.전쟁이 가져오는 또 다른 전쟁과 굶주림,잔악성,전염병,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케 된다.
3.무모한 전쟁의 발발을 막는다.
4.예수님의 가르침에 합당하다.
단점: 1.하나님이 허용하신 전쟁에 대한 설득력이 없다. 하나님 명령에 대한 손상을 줄 수 있다.
2.하나님의 정의구현으로서의 전쟁에 대해 설득력이 없다. 사랑과 정의는 모순되지 않는다.
3.전쟁을 피함으로 오히려 죄 없는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무고한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한 설득력이 없다. 악과 살인을 막을 수 있는데 막지 않는다면 이는 악이다.
3.선별주의.
선별주의는 정당한 전쟁에는 선별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이다. 이는 어떤 전쟁은 정당하며 어떤 전쟁은 그렇지 않다는 판단아래 선별하여 전쟁에 임할 것을 지지한다. 선별주의는 대부분 기독교 공동체가 지지하는 견해이다.
1)행동주의에 대한 반박
정부의 명령이 하나님의 명령에 모순이 될 수 있다. 성서는 이를 지지한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게 기도하지 말라는 정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초기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로마 정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히브리 산파들은 태어난 사내아이들을 죽이라는 정부의 명령에 불복종 했다. 결국 모든 정부의 명령이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것이 될 수 없다. 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2)평화주의에 대한 반박
성서에서 전쟁이 다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전쟁은 정당하다. 어떤 경우에는 인간의 생명을 취할 것도 명한다.(출21:26)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을 전멸시키라는 전쟁을 명하고 인정했다(신20:10-19) 사실상 신구약 성서 전체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쟁을 제의한다.
3)선별주의 근거
성서적 근거: 집주인이 담넘어 들어오는 도둑과 싸우다 죽였을 경우(출22:2) 이는 용인된 정당방위 살인이다. 죄없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전쟁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창14:19,20)
도덕적 근거: 악과 살인을 막을 수 있는데 막지 않는것은 악이다. 이를 위해 군대나 경찰은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장점: 1.정당성 여부에 의해 전쟁을 판단할 수 있다.
2.무모한 전쟁도, 회피하는 전쟁을 피할 수 있다.
단점: 1.누가 전쟁의 정당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다.
2.성서에서 획일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4. 견해
전쟁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랜된 현상이며 끝임없이 이어지는 고질적인 현상이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인간은 전쟁을 끝까지 이어갈 것이고 전쟁이 없어지지 않는한 인류는 전쟁으로 멸망하고야 말것이 분명하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전쟁은 우리 문명의 존망이 걸려있는 결정적인 문제"라 말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무기를 사용하지 않은적이 한번도 없다고 한다. 결국 언젠가 인류는 핵(수소폭탄)을 사용할 것이고 이를 의미하는 세계 3차대전은 인간의 멸망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이제 평화의 문제는 지구생존의 문제이고 전 인류 생존의 문제이다.
평화를 유지하는 길만이 생존의 길임을 인식해야 한다. 전쟁을 하나님이 승인하신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가 멸망하기를 원치는 않으심이 분명하다. 전쟁을 하나님이 승인하신것으로 그 정당성을 부여해서는 안된다. 대량 파괴의 신무기와 지구를 파괴할 수 있는 핵무기는 더이상 전쟁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힘들게 하였다.
이라크 전쟁 결정시 부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결정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것이 전쟁의 정당성을 얼마나 부여할 수 있을까?
전쟁은 이제 어떤 이유는 정당화 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을을 알아야 한다. 이제 전쟁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묻기 앞서 전쟁없는 시대를 위한 간구가 더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교회는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계시된바 파괴적인 무기를 인간 복지를 위한 도구로 만드는 전쟁이 없는 세계에 대한 희망을 이뤄나가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날에는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치치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사2:4)
이 날이 오면 현재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전쟁 경비와 방위 예산이 지구를 새롭게 단장하고, 온 인류를 풍성히 먹이고도 남고, 어린아이들이 사자굴에 손넣고 장난치는 에덴동산이 형성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