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절 신학

성령세례

권순만 2009. 2. 20. 18:39

성령세례

 

1.복음주의 신학

현대 복음주의적 신학을 성서 혹은 말씀 신학이라고 묘사할 수 있다. 현대 복음주의적 신학은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적 근거로 삼고자 한다. 복음주의 신학적 특징은 말씀 중심이다.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존재와 사역을 통하여 이해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 말씀의 존재론적 실체로 해석할 뿐만 아니라 성서의 가르침을 그리스도의 구속적 존재와 삶과 연계시켜 이해 해석한다. 복음주의의 말씀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을 내포하고 있다. 성령의 존재와 활동이 그리스도의 구속적 존재와 활동의 측면에서 이해된다. 성령의 독특한 존재와 활동을 인정할  신학적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2. 복음주의적 오순절 신학

오순절 신학은 성령의 역사에 대한 신앙적 신학적 의미를 강조한다. 반면복음주의 신학엔 오순절 신학을 논할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복음주의적 오순절 신학은 복음주의 신학에 오순절신학의 특징인 성령세례론만 첨부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제 새롭게 성령의 독특한 존재와 활동의 신학적 의미를 신학체계에 반영하는 성령적 관점의 신학을 제시하는 오순절 신학을 세우는 것이라 하겠다.

 

3. 총체적인 오순절 관점의 조직신학"

총체적인 오순절 관점의 조직신학이란 오순절적 핵심과 영성을 조직신학의 전 체계와 내용에 적용시킨 그야말로 순수한 오순절적 관점의 조직신학을 말하는 것이다. 오순절신학은 기존 개신교의 복음주의 신학에 성령의 능력적 역사의 신학을 병행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4. 오순절신학에 있어 성령세례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은사적 성령세례와 구원적 신앙과 회심을 두 단계의 영적 경험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성령으로 인하여 회심하고 믿고 거듭나는 것으로 성령세례와 동일시 한다. 은사적 성령세례의 가능성 자체를 부인한다.

칼 바르트에 의해 나타난 복음주의신학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계시적 말씀에 있다. 그러나 오순절 조직신학의 출발점은 복음주의신학의 출발점과 다를수 있다. 오순절신학의 독특성과 자율성을 위하여 이의 독특한 출발점을 강조할 것이 필요하다.

현대 오순절 주의는 성령세례의 독특한 정의로부터 시작한다. 오순절신학의 독특한 정체성이 바로 성령세례에 대한 이의 독특한 해석으로부터 온다. 성령세례는 오순절신학의 구성적 해석적 축이어야한다.성령세례의 경험과 신념위에 오순절신학과 영성의 특성이 서있고 오순절신학의 본질과 특성을 성령세례에 대한 이의 견해를 통하여 해석할 수 있다.

 

5.오순절신학의 은사적 가능성.

칼 바르트가 제시한 복음주의적 신학의 가능성은 하나님 말씀의 계시와 이를 인식,개념화 할 수 있는 구원적 신앙이다. 한편 오순절신학의 가능성은 성령세례의 은사적 경험이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세례를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은사로 생각한다. 은사적 경험은 모든 신앙인들이 다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은사적인 신앙은 오순절신학의 가능성으로 복음주의적 신학의 가능성인 구원적 신앙과 구별될 수 있다. 성령세례는 성령의 은사적 신앙과 충만을 초래한다. 이는 구원적 신앙를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더 충만히 경험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은사적 신앙은 구원적 신앙보다 하나님을 더 친밀히 인하고 교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6.성령세례

오순절주의자들은 은사적 신앙을 구원적 신앙과 회심후에 오는 하나님의 후속적인 선물로 간주한다. 성령세례는 첫번째 은혜와 축복인 회심과 중생후에 주어지는 후속적인 은혜와 축복이다. 오순절주의자들에게 회심(중생,거듭남)은 성령 자신의 역사이다. 성령은 회심과정의 신적 활동의 주체이다. 한편 성령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관한다. 회심은 구원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성령세례는 그렇지 않다. 맥퍼슨은 회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세례가 주어짐을 암시하면서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복음전파의 봉사를 할 수 있는 능력임을 지적한다.

 

7. 성령세례와 충만.

 맥퍼슨은 성령세례의 독특성을 차별화하기 위해 성령세례의 경험을 일회성으로 단정한다. 성령세례는 회심자들이 전 삶을 통해 오직 한번 밖에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으로 취급한다. 맥퍼슨은 성령세례의 독특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를 성령충만과도 의도적으로 구분한다. 비록 성령세레의 궁극적인 결과를 성령충만으로 이해함에 불구하고 이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성령세례의 경험이 일회적인 반면 성령충만은 계속적으로 새롭게 경험될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성령충만에 선행되는 것으로 성령세례 없이는 성령충만을 경험할 수 없다.

 

8. 성결보다는 능력인 성령세례

웨슬리적 성결운동에 영향을 입은 초창기 오순절주의자들은 중생과 더불어 성결을 성령세례의 선행조건으로 간주했으나 케직의 영향을 받은 후기 능력주의적 오순절주의자들은 성결을 성령세례의 선행조건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성령세례의 주요 목적은 복음전파와 봉사를 위한 능력 부여임을 천명한다. 성령세례가 성결보다는 능력이라는 것은 누가복음의 능력 성령세례론에 근거한다.

 

9. 성령세례의 첫번째 가시적 증거 방언

방언을 성령의 다른 은사들과 차별화하는 강한 영성이 고전적 오순절주의에 있다. 이들은 성서에 충실히 입각하여 사도행전에 기록된 여러 사례들을 통해 방언은 성령세례의 첫번째 증거이며 이는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오순절주의자들의 독특한 성서해석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들의 독특한 차별화 영성은 성령세례의 경험을 어떤 경험과도 차별화 시키고자 했고 방언을 성령세례의 첫번째 증거로 규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10. "새로운경험"으로서 성령세례

Lesslie Newbigin은 오순절운동을 카톨릭과 개신교 운동 다음에 일어난 제3의 물결로 간주하면서 기회는 주어진 말씀과 제도에 설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함께 임하는 것에 있어야 함을 권고한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세례의 경험을 기독교 삶과 영성에 새로운 차원의 시작으로 본다.  성령세례를 받기 전보다 후에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더 많은 성력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순절날 성령 강림은 성령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의 기원이다. 왜냐하면 믿는 자로 하여금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영적 체험과 능력과 영성을 가지게 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성령세례를 통하여 새로운 차원의 영적 체험과 능력과 영성을 소유할 수 있는 근거와 가능성이다.

 

11. 성령세례의 계속성

대부분의 기존교회들은 예수의 신적 불변성에 입각하여 성령세례의 현세적 기능성과 연속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맥퍼슨은 오늘날 성령세례를 통하여 오순절 날 성령강림의 본질이 그대로 재현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근거는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히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오순절주의자들만의 차별화된 영성과 신학이다.

 

12. 성령세례의 궁극적 목적.

 성령세례의 궁극적 목적은 복음전파와 봉사를 위한 능력부여이다. 성령세례는 회심과 구원보다 능력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간혹 오순절주의자들을 단순한 은사주의자들로 단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순절 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것이다. 오순절 영성은 은사 자체보다 은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뜻과 목적에 더 관심이 있다.

 

13. "늦은비의 축복"

맥퍼슨은 성령세례를 늦은비의 축복 즉 마지막 날 혹은 종말의 축복으로 본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사도적 신앙과 능력을 늦은비 시대 즉 종말적 시대 의 사람들인 자신들을 통해 복구될 것으로 믿는다. Wesley Myland는 요엘2장에 두가지 언약이 있음을 지적하는데 말세에 성령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라는 28절 언약 이외에 23절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언약이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탄생시켰던 성령세례를 이른비의 축복이고 이제 주님의 재림 직전에 임할 성령세례를 늦은비의 축복이라 말한다.

 Myland는 현대 오순절 운동의 태동,유지,번창시킨 성령의 역사를 늦은비의 시대와 축복으로 해석하였다. 교회 역사상 전례없는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이시대 오순절 운동을 통하여 전세계에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초대교회에 주었던 성령의 모든 은사들이 이 시대의 오순절 운동을 통하여 복구 회복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14. 그리스도 중심적으로의 성령세례

오순절주의자들도 역시 성령세례와 은사를 성령자신의 독특한 활동과 계시로 그리고 성령 자신을 계시자로 명백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이는 성령세례와 은사에 대한 이들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견해가 이의 계시적 의미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게한 주요 원인이다. 이들은 성령보다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세례와 은사 활동의 주체로 보고, 성령보다는 성자를 성령 세례자로 주장한다. 이는 극히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지배적이다.

 

15. 성령세례의 차별된 경험.

성령세례는 회심과 구원보다 능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성령받은 사람은 방언,예언,신유등의 은사를 동반하는 영성과 능력이다. 성령의 은사를 동반하는 영성과 능력은 회심자들이 자동적으로 가질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성령세례를 받은 회심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다.

 

16. 성령세례의 삼위적특징.

성령세례와 은사는 성부와 성자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성령 자신의 독특한 존재를 드러내는 자신의 독특한 활동과 계시가 될 수 있다. 이들을 실제로 집행하고 부여하는 실제 성령세례자와 은사 부여자가 될 것이다. 삼위 하나님안에서 성령 세례자와 은사 부여자는 성령의 양도할 수 없는 독특한 존재가 될 것이다. 성령의 독특한 존재와 활동은 교회의 정통적 삼위 일체론을 변호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17. 성령세례자로서의 성령

성령세례는 성령 자신의 존재를 계시하는 자신의 독특한 활동이다. 성령세례는 그 자체가 계시적 수단인 동시에 계시의 객관적 실체이다. 이는 성부와 성자 하나님에게 양도할 수 없는 성령 자신만의 독특한 활동과 계시이다. 삼위 하나님의 관계속에서 성령의 독특한 활동과 존재가 바로 성령세례에 의하여 계시된다. 우리가 성령적 관점에서 볼때 우리는 성령을  성령세례의 계시자로 인식할 수 있다.

 

18. 삼위적 신학.

이는 성령이 인격적 존재와는 상관이 없이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과 에너지라는 잘못된 암시를 철저히 배제한다. 성령의 자의적 뜻을 인정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주체와 의식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을 확실히 한다.

성령 자신만의 인격적 의식과 주체는 삼위하나님 안에서의 성령의 존재적 독특성을 제의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다. 더 나아가 이는 성부와 성자하나님을 각자 의식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로 해석할 수 있는 기준과 축을 제공할 수 있다.

 현재 오순절신학의 큰 과제가 바로 이 성령세례론과 충만론과 은사론의 계시적 삼위적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19. 계시자로서의 성령세례.

신정통주의 칼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아들)만을 유일한 객관적 가능성과 실체와 원천과 수단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계시론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부인하는 오류를 범한다. 성령하나님도 자신의 독특한 활동(,성령세례와 은사)을 통하여 자신의 신적 존재와 뜻을 계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독특한 활동이 계시가 그리고 성령 자신이 계시자가 될 수 있다.

 

20. 성자와 성령.

성자를 성령세례자로 보는것 보다 실제 성령 세례자인 성령을 보낸자로 해석함이 합당하다. 오순절신학과 영성은 성자를 성령을 보낸자로 수용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론은 하나님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들로부터 성령이 출현했다고 주장하는 서방교회의 휠리오퀘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성령의 출현과 성자의 탄생 모두 다 하나님 아버지의 한 원천으로부터 유래했다는 동방교회의 모나키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성자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성령을 보내어 성령세례를 가능케 한 자이지 성령세례를 직접 집행하는 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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