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신정통주의 신학

권순만 2009. 3. 1. 18:56

신정통주의 신학

 

1. 칼 바르트

바르트는 19세기 신학의 벙법론을 정반대로 뒤집어 놓았다. 인간의 경험이나 종교적 의식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의 신학은 한마디로 하나님 말씀의 신학 또는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이라 할 수 있다.

1919년에 출간된 그의 첫 저서인 "로마서 주석" 19세기 신학과 20세기 신학의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그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다"라는 유일한 근거하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 대신 인간, 인간의 신앙,경건,감정 및 문화등에 중심을 두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기를 든 것이다.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 초월과 내재성을 강조하던 초기의 입장을 포기하고 하나님과 인간, 시간과 영원 사이의 질적 차이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 질적 차이를 표현 하는 수단으로 변증법을 사용했다. 로마서 주석을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이 떨어진 것과 같은 충격을 신학계에 주었다.

바르트 신학의 중심은 세가지 강조점에서 잘 나타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실재한다. 하나님의 말씀외에 어떤 다른 토대위에 신학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세가지 이다.

바르트는 성경을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는 개신교 정통주의의 성경 무오성의 교리를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성경의 중요성과 권위를 파괴하는 자유주의 입장을 거부했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동일시하지 않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언으로 간주했다. 하나님 말씀 중심적인 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신념은 만년에 이르러서도 변함이 없었다. 죽기 한달 전에도 "내가 결정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성서를 통하여 신학을 세우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르트의 가장 큰 공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경험을 신학의 중심으로 삼았던 신학의 흐름에 반기를 들고 이를 차단하려 한것과 예수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신학의 중심으로 삼은 것이다.

 

2. 루돌프 불투만

불투만이 평생의 과제로 삼았던 신학적 관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전달되어야 하는가 였다. 불투만은 두가지 접근 방법을 통해 이 과제를 수행하고자 했다. 신약성서의 비신화화와 실존론적 분석이 그것이다. 즉 신화적인 표현이나 사고로 둘러 싸여 있는 복음의 진리를 그것으로부터 벗겨내는 것이고 1세기의 개념,언어,의미들을 현대인이 이해하기 쉽고 인간 실존의 현실 상황에 일치하는 용어들로 전환하는 것이다. 비신화화에 대한 논쟁은 20세기 최대의 신학 논쟁으로 성서 신학은 물론 조직 신학,실천 신학등 신학의 전분야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신약성서에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볼투만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19세기 자유 신학자들이 그런 주장을 했다. 그러나 불투만은 신약성서에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는데는 입장을 같이 했으나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그들의 입장과 달리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화를 상대적이며 시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다라서 신약성서의 일체의 신화적인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으며 종교와 윤리의 기본적인 원리만을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불투만은 그들을 제거할 것이 아니라 바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화의 제거나 파괴 같은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신약 성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힐 수 없으며 현대인의 복음 이해라는 과제를 충분히 수행할 수 없다고 보았다. 보다 적극적으로 신약 성서에 있는 신화의 요소들을 진정한 기능이 무엇인지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신화에 대한 재해석이며 비신화화이다.

                                      

"신화적인 개념들 배후에 있는 보다 깊은 의미를 회복하려고 시도하는 신약 성서의 해석 방법을 나는 비신화화라고 부른다. 그 목적은 신화적인 진술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다."

신약성서에 대한 불투만의 실존적 해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한 분석에서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신약성서가 그리스도의 사건을 신화적인 언어로 제시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것을 비신화적인 용어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투만은 신화적인 언어를 과거 사건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불투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과거의 사건이나 신화론적 사건이 아닌 영원한 현재적 사건으로 해석했다. 현재 우리들의 삶과 결정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건인 것이다. 그는 대속적 속죄론이나 만독설과 같은 전통적인 해석과는 달리 세상에 대한 심판과 인간과 대한 심판과 구원을 십자가의 영원한 의미로 간주했다.

실존론적 해석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보다는 오히려 그 사건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 사건의 교리적 내용보다는 오히려 인간 실존과의 관계성을 문제시하는 것이다.

불투만의 비신화 논쟁의 핵심이 무엇이며 비신화론은 왜 문제시되고 비판받게 되었는지 몇가지 지적하면

첫째, 불투만이 신약 성서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요소를 신화로 간주한 것 자체가 가장 근본적인 논쟁점이었다.

둘째, 불투만이 과거의 역사 보다는 실존적 역사, 사실보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불투만은 동정녀 탄생,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등에 대한 성서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그 신화적인 의미를 찾고자 했다. 이러한 불투만의 입장은 복음의 역사성을 부정하며 기독교의 객관적이며 역사적인 토대를 파괴하는 동시에 신학은 인간의 주관적인 존재 영역으로 축소한 것이다.

셋째, 불투만은 신화를 저 세상적인 것을 이 세상적인 것으로,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에 의해 표현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한 것이라고 정의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러한 신화적 표현에서 과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느냐는 것이다.

 

3. 폴 틸리히

틸리히 신학은 경계선상의 신학,철학적 신학,문화의 신학으로 특징된다. 신학과 철학,종교와 문화 사이를 연결하는 교량 건설의 그의 관심사였다.

틸리히에게는 방법이 곧 신학이다. 틸리히의 신학 방법론의 핵심은 상관 방법이다. 이것은 철학과 신학, 종교와 문화 가운데 어는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편을 조정하고 중재하며 양자 모두 수용하는 신학 체계를 건설하려는 틸리히의 방법론이다. 상관의 방법은 한마디로 철학적 질문과 신학적 대답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틸리히는 가장 영향력있는 현대 기독교 사상가 중 하나다.  그러나 그는 개신교에 강한 영향을 끼지지 못했으며 힘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의 탁월성은 오히려 현대의 역사적 관점과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 근거하여 기독교 신학을 존재론적 입장에서 해석한 것에 있다. 그는 "궁극적 관심", "새로운 존재", "상관의 방법"과 같이 현대인의 감성에 와 닿는 신학 개념과 용어를 제시했다.

 

4. 라인홀드 니버

니버는 자신이 신학자라는 것을 자주 부정했고 실제로 조직 신학서를 쓰지도, 기독교 세부적인 교리에 관심도 표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향력 있는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최초로 자유주의 신학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고 배격한 사람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자 죄인라는 양면성을 지닌 존재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면만 강조하고 죄인라는 면을 소홀히 했다. 반면에 정통주의 신학은 죄인라는 면만 강조하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면은 소홀히 했다. 니버의 기독교적 현실주의는 인간의 양면성을 공정하게 평가하려는 시도였다.

니버의 인간 이해는 두 자료에 기초했다. 고전적 인간관과 성서적 인간관 이다. 고전적 인간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인간 이해로 이성에 의한 철학적 접근을 의미하며 성서적 인간관은 유대교와 기독교적 인간 이해로 계시에 의한 신앙적 접근을 의미한다.

니버에 따르면 현대적 인간관은 고전적 인간관과 기독교적 인간관의 일부를 혼합한 것이다. 니버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보았다. 하나님의 형상은 이성적 기능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자기를 초월하여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식까지도 도달하는 능력, 곧 정신의 자유를 의미한다.

한편 니버는 인간의 본질을 죄와의 관계성에서 파악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조물에 불과하다. 인간은 유한하며 의존적이고 나약하다. 인간은 이러한 자유와 유한성 때문에 자신에 대해 염려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면서도 아직도 제한적인 존재라는 의식이 불안이다.

니버는 이 불안을 죄의 근원으로 간주했다. 불안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불안은 신앙 모두를 가능하게 한다.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창조주 하나님에게 의존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이 죄이다. 불안을 인간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는데서 죄가 일어난다.

인간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 불안을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자신의 유한성 부정과 자신의 자유부정, 즉 교만과 육욕이 바로 그것이다. 교만은 인간의 유한성을 거부하고 영적인 능력과 자유를 과대 평가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까지 높이려는 것이다. 육욕은 정신의 자유와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시도이다. 자연의 충동에 굴복하여 영적인 능력을 포기하고 동물적인 본능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만은 인간을 과대 평가하는 것이라며 육욕은 인간을 지나치게 괴소 평가하는 것이다.

니버의 인간관은 두 측면, 즉 하나님의 형상과 죄인, 또는 자유와 유한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 특색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고귀한 존재인 동시에 죄로 인해 비극적인 운명에 속한 존재이다. 정통주의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관은 인간의 두 측면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한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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