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투르니에의 기독교 심리학 서평
1. 폴 투르니에의 심리학
투르니에에 의하면 인간은 동시에 두개의 세계에 속한다. 하나는 자연적 세계이며 또 하나는 초자연적 세계이다. 자연 세계의 한 부분으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동하고 먹고, 늙고, 병드는 동물적인 몸을 가지고있다. 또한 인간은 감정을 경험하고 사물을 상상할 수 있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의 지성, 즉 생각하고 뜻을 정하며 추상적인 생각을 다루는 ‘마음’이 있다. 이 세가지 자연적 부분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이를 인간의 전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투르니에는 다른 한부분이 더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자연적 세계의 한 부분으로 자연적 법칙에 순응한다. 그러나 인간은 동시에 초자연적인 세계의 한부분으로서 영적 존재이다. 이를 피라미드형으로 설명할 때 인간은 몸과 정신과 마음이 위에 있는 영에 순응할 때 비로서 건강할 수 있다.투르니에는 인간이 자연 세계와 초자연 세계에 동시에 속해 있음을 강조한다. 인간의 행동은 과학적으로 연구 가능한 자연적 힘에 좌우되기도 하고 보이지 않고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도 없는 초자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에 좌우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정서적으로 문제를 가진 사람을 이해하고 돕기 원한다면 지적으로 연구되는 자연세계와, 의사와 환자 사이의 교제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초자연적 부분을 둘 다 고려해한다. 투르니에는 이를 의사와 환자 사이의 ‘영적 교제’라 불렀다.
투르니에는 세상에는 중요하고 서로 대조되는 두가지 철학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두가지 복음이라고까지 부른다. 첫번째는 심리학 복음으로 자신을 주장하고 보호하며 능력을 개발하고 야망을 추구하며 인생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싸우라고 우리에게 권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종교적 복음은 자기 부인과 자비와 온유와 사랑의 삶을 호소한다. 이 복음은 안정된 자리를 떠나고 이기적인 야심을 멀리하고 남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라 한다. 신학자들은 두번째 복음을 회중에게 설교한다. 심리학자들은 첫번째 복음을 내담자들에게 주입시킨다. 투르니에는 이 두가지 복음이 다 옳다한다. 왜냐면 둘다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둘은 상호 보완적이다. 두번째 복음은 첫번째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다. 둘다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둘다 필요하며 어느정도까지 두 복음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2.투르니에의 신학
투르니에는 자신이 믿는 신학적 신념을 주관적인 생각이 아닌 객관적인 진리의 표준에 의해 검증되어야 하는데 이 표준을 성경으로 본다. 이때 사용되는 성경의 특정 본문은 전체 성경 계시에 비추어 고찰 될 때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그는 신학자들의 주요 논제엔 관심이 없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생활과 사역에 일어나는 질문에 성경이 어떻게 실제적인 해답을 줄 수 있는지를 분별하는데 더 관심을 갖고 있다. 투르니에는 이 시대 성경이 하나님을 계시하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들어 자연도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며 창조주의 위대함과 지혜와 능력과 사랑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역사와 우리 일상 생활의 사소한 사건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전쟁,사고,질병,치유,실패,성공…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는 모험에 참여한다. 투르니에에 의하면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기도와 묵상중에 떠오르는 생각을 통해서, 교회의 교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투르니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었음을 믿는다. 인간은 단지 최고로 진화된 고등 동물이 아니며 같은 틀에서 나온 똑 같은 로보트도 아니다.각 개인은 하나님이 개별적 목적을 가지고 계신 독특한 피조물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거나 무시할 자유가 주어졌다. 이것이 인간의 선택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을 외면하고 더 나은 방식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인간은 자신과 후손과 자연 전체에 계속되는 고통과 영속적인 혼란을 초래했다. 우리는 다시금 에덴동산의 조화와 내적 평화를 원하지만 여전히 혼란과 죄 가운데 방황하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타락한 현실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방법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원한다. 우리는 인간의 자구 노력은 무력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에게는 자신의 공로에 의지하는 구원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구세주의 간섭에 의존하는 구원이 필요한 것이다.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분이 베푸는 구원은 우리 인간이 수용할 수 있고 거부할 수 있다.
투르니에는 지옥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이는 지옥이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마귀는 결국 불 못에 던지운바 되겠지만 아무도 비슷한 운명에 처하지 않을 것이란 소견을 말한적이 있다. 전문적인 상담가가 지옥을 강조하지 않는 쪽으로 물러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설교자들이 영원한 형벌을 환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투르니에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기를 바라며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도망가게 하거나 성경의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기독교의 활동은 교회로 하여금 자기 만족에 빠지게 만들고 현실 요구에 부적절한 교회로 만드는 성향이 있다. 투르니에는 상담가로 활동해온 여러해 동안 영적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실생활과 동떨어지고 너무 이론적이어서 교회를 떠나거나 회피하는 것을 보았다. 교인들은 종종 허황된 논쟁이나 벌이고 사소한 문제로 불화하고 서로 질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바깥 사람들은 우리의 말과 행동사이에 모순을 발견하며,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위선자라는 결론을 내린다.
교회는 그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하며 목회자는 건전한 교훈을 가르치며 개인들에게 영적으로 성숙하는 길을 보여주고, 평신도들이 어떻게 행하고 증거해야 하는지를 지도해 줄 의무가 있다. 교회는 신자든 불신자든 자신의 죄책감을 직면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사랑과 용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한다. 교회는 신앙적인 문제만 고려하는 상아탑으로 물러나서는 안되며 오히려 정치,경제,과학,윤리 같은 문제를 끌어안고 씨름해야 하며 이러한 문제를 하나님의 계시가 어떻게 조명하는지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투르니에는 어떤 신학적 문제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리스도의 생활이란 교리를 노예처럼 준수하는 것이나 선을 행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며 진정으로 사랑의 하나님의 인도를 기꺼이 받는 것이다.
3.투르니에의 심리학과 종교의 통합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심리학을 불신하고 심리학자들 역시 기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 둘을 통합시키려는 시도는 투르니에의 생애 대부분에 관심을 끌었던 과업이다.
심리 치료사는 기독교를 자기 부인과 온유함 그리고 쾌락적인 모든 것을 억압하는 제도로 보고 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삶을 제한하며 인간을 노예화 하는 제동 장치로 보인다. 세속적인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은 인생에서 그리스도의 참된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사실은 사람에게 새로운 기쁨과 의미를 가져다 주는, 자유를 주는 힘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종종 심리학이 참된 신앙에 위험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두려워 한다. 심리학자들은 기독교 윤리를 무너뜨리고, 종교적인 경험은 하나님의 신적인 영향보다는 정신적 충동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며, 죄나 죄책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투르니에는 심리학과 종교의 갈등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 한다. 이러한 오해는 사람들이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 잘 못 이해하는데서 기인한다. 심학자와 심리 치료사는 서로 대립된 관계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데 관심이 있으며 경청과 격려와 위로와 지도라는 똑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투르니에는 과학과 과학적인 기법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투르니에는 과학을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라 부른다. 그는 학생들에게 철저한 과학적 기초 훈련을 받으라 충고한다. 그러나 과학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과학은 인간에 대한 자연적인 영향을 설명할 수 있지만, 인간 행동의 초자연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질병이 인간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인간이 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과학이 중력의 법칙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대답할 수 있지만 그 법칙이 왜 있어야 하는지는 대답하지 못한다. 의미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을 묘사할 수 있지만 과학은 어떻게 존재의 목적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말해 줄 수 없다.두려움 같은 감정을 분석할 수는 있지만 두려워하는 인간을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지는 못한다.
투르니에는 종교가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불건전한 종교의 경우 두려움을 느끼게 하고 사람을 질식시키며 문제를 회피해 비현실 세계로 도피하게 해서 심리적인 재앙을 초래한다. 이와 반대로 ‘은혜의 종교’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죄의식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며, 신경증이 있는 사람에게 평안을 주며, 더 큰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어 안정된 인격을 창조한다. 종교적인 메시지는 정신 질환을 유발하는 인자가 되기도 하고 치유하는 인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리학자들과 성직자들은 동역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때로 심리 치료를 통해 환자는 무의식적인 동기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신앙적 회심을 경험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종교적인 신앙 체험이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심리 치료의 더 잘 받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죄책감은 심리학자나 신학자 모두에게 똑같이 중요한 관심사이다. 어떤 학자는 죄의 문제는 심리학과 종교가 만나는 곳이라고 했다. 죄의식은 이 두 분야에 가장 큰 갈등이 야기되는 동시에 통합이 가장 필요한 영역이란 뜻이다.
투르니에는 심리학과 의학의 주제를 통합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심리학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영역으로 보는 죄책의 주제와 의학에서 그 위치를 조명했다. 투르니에는 죄책감이 현대인 가운데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가를 보여 줌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그는 타인의 판단으로부터 유래하는 ‘거짓관 죄책감’과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책망하실 때 느끼는 ‘참된 죄책감’으로 구분했고 이를 다루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는 놀라운 용서를 받아야 한다.
투르니에의 견해에 의하면 죄책감은 심리학이라는 과학과 종교라는 영역에 동시에 속하는 주제다. 투르니에는 심리학자와 성직자가 대담하게 힘을 합하여 사람들을 죄책감에서 해방시키고 또한 유일한 참 해결책인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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