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안수의 타당성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전통주의자들은 전통성, 적합성, 성서주석등으로 여성 안수를 반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 안수의 문제를 일축하는데 사용되는 핵심적인 본문들은 고전11:2-12과
그러나 기독교의 신학은 신앙의 본질들에 언제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역사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해야한다. 고전11:5,6절에 입각해 실상 카톨릭은 여자들이 두건을 쓰고 미사를 드리지만 개신교는 이를 당시 풍습적인 것으로 해석 그대로 행치 않고 있다. 여성 안수의 일축에 쓰인 본문은 바울의 남녀간 권위 순서 문제였고 11,12절을 통해 이에 대한 논쟁의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 즉 남녀사이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의 질서는 존재하지만 이것이 곧 근본적인 능력이나 인간 기본권의 차이는 아닌 것이다.
.가장 분명한 신학적 출발점은 세례와 목사안수의 분명한 유비이다. 왜냐면 세례를 통하여 성의 여하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이 일반교역에 부름을 받고 위탁을 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비적으로 만일 모든 사람들이 대표교역의 가능성을 부여받았다면 성의 여하에 관계없이 누구나 말씀과 성례전과 돌봄의 교역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분명 성경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동등한 위엄을 지닌다는 관점, 민주주의와 인권주의의 관념들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기독교 전승이 너무 지나치게 사제직을 남성전유물로 잘 못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현대 이전시대의 사상들은 여성들을 교역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을 인식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 특히 남존여비의 사상이 깊은 우리나라에 있어 아직까지도 이 문제는 장애물로 남아있는 듯 하다.
다음 몇가지를 통해 여성 안수 찬성을 표명하려한다.
1.교역이라는 단어의 어근 자체는 섬김이라는 근본개념을 갖고 있다.여성에 있어 섬김의 자세는 초대 교회부터 지금까지 남성들보다 훨씬 강했다.
여성은 항상 교회가 허용한 것 보다 더 섬기려는 자세를 취해왔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기회였다. 이제는 이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2.여성들은 어떤 교역의 임무들에 대해 남성들보다 심리학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감당할 수 있는 재질을 소유하고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과 다른 호르몬 구조를 갖고 있어 천부적으로 공감의 능력이 남성보다 뛰어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엔 유명한 조각가 화가 건축가들이 많았다. 그런데 거의 모두가 남자들이다.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들에겐 한결같이 남성적 기질보단 여성적 기질이 많았다 한다. 이에대한 결론으로 순전한 남성 맨탈리즘으로는 도저히 예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목회가 예술은 아니지만 여성적 기질은 그만큼 민감하게 섬세히 반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3.여성들에겐 위기의 때 독특한 지도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예로 구약의 선지자드보라 . 불란서의 잔 다르크, 영국의 대처 수상을 들 수 있다. 현재 한국 교회의 위기의 때 이 독특한 지도력을 기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여성들이 교역의 직을 담당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하는 부득이한 신학적 이유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초기의 신앙고백 가운데도 여성을 성직에서 배제시키는 일은 발견되지 않는다. 사도신조의 어느 조항도,니케아신조 가운데도 여성을 성직에서 배제시켜야 한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성직자의 지도력의 범위를 당연 여성들에게도 부여해야 할 것이다.
'목회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회사역의 모델(윌리엄 캐리) (0) | 2009.04.26 |
---|---|
목회의 5가지 방향설정 (0) | 2009.04.26 |
목회자의 필수과목과 선택과목 (0) | 2009.04.26 |
목사직의 고립주의 타협주의 (0) | 2009.04.26 |
목회신학의 정의(Definition (0) | 2009.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