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직의 고립주의 타협주의
목회에 있어 두가지 왜곡된 방향들이 있는데 먼저는 현대의 타협주의와 고대의 고립주의가 그것이다.
첫째, 교역에 대한 현대의 특징적인 오류인 타협주의는 교역의 본질을 인간의 사회적 기능이나 철학적 통찰력 또는 도덕적 교훈이나 심리학적 상담,또는 정치적 변화 옹호론으로 대체시키려고 시도한다. 타협주의는 신본주의 요소보다 다분히 인본주의 요소와 육신적인 요소를 특징으로 한다. 타협주의의 결정적 문제는 성육신의 교역을 사회적인 요인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환원시킴으로 육체화된 세상적인 측면만 강조하여 그 성육신의 교역을 축소시키고 있다.
둘째, 고립주의는 타협주의와 반대가 되는 왜곡인데 이것은 전근대적인 의식을 보다 특징으로 한다. 이 견해는 교역의 신적 유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교역의 인간적인 유한한 측면을 잃어버린다. 이것은 교역을 특원적인 계급 또는 배타적인 성직제로 격상시키는 경향이 있다
남을 대표하여 섬기고자 구별하여 세웠다는 대신에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여 교역을 사람들과 분리시키며 현재의 세상에서 소외시켜 교역을 부적합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교회의 덕을 세우고 교회를 바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친히 목사의 직을 임명하시고 세우셨다는 중대한 확신이 기독교 교역에 있어 중요하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현재의 교역을 통하여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 자신의 교역을 구현해 주기를 바라시며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목사는 하나님과 교회에 의하여 부름을 받고 안수를 받아 교회를 대표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례하고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완전한 응답을 하도록 하고 기독교 공동체를 인도하고 양육하기 위해 구별된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이다.
만일 우리가 교역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구성하려면 자신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가하는 극단적 개인주의적인 질문에 기초해서는 안된다. 또 한편으론 일반 대중의 의견에 따라가지도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의 교역이 우리 자신의 목회 활동을 어떻게 활기 있게 하고 능력을 부여해 주면 성화시킬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자세가 고립주의와 타협주의에서 탈피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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